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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Yann BAAC

사막 행성D의 기계 생명체 ‘Alago hajimara’에 대한 수석 연구원 M의 연구 일지

최종 수정일: 7월 7일



사막 행성D의 기계 생명체 ‘Alago Hajimara’에 대한 수석 연구원 M의 연구 일지

우리는 ‘우주생명 연구단’이다. 우리는 우주의 수많은 행성들에서 아무도 모르는 생명체들을 찾아 연구하고 널리 알리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 이런 원시 행성들은 척박하고 거칠다. 우리는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개인마다 바이탈 사인 장치를 하고 있으며, 응급 우주선이 어디든 워프를 타고 1분 안에 도착한다.

어느 날 수석 연구원 M에게 건강 악화 징후가 나타나 급히 행성 M31-D1(이하 사막 행성 D)으로 갔지만 아쉽게도 이미 숨은 끊어진 상태였다. 우리는 그가 남긴 연구일지를 조사해 그가 연구하던 기계 생명체 'Alago hajimara'의 존재와 사망 이유를 알게 되었다.

우리는 처음 발견한 생명체의 연구를 목숨보다 소중히 했던 우주생명 연구원 M의 노력을 알리고자 이 기계 생명체의 놀라운 기능을 대중에게 공개하고자 한다. 사막 행성 D에서 지성체가 존재하는 제일 가까운 행성인 이곳 MWG-S-4(이하 지구)에 첫 전시를 한다. 다음은 연구원 M의 20일간의 연구일지에서 중요한 부분인 11일을 여기에 쓴다. 이것으로 우주생명 연구단원들의 열정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우주생명 연구단 일동-

 

#13월 5일 - 1일차

우주생명 연구단의 신생명 발견 프로젝트로 연구비를 따내기 위해 인공 우주에서 나와 아무도 관심 없는 원시 우주의 안드로메다 행성의 ‘사막 행성 D’를 조사하러 왔다. 이곳은 이 은하에서 지성체가 있는 유일한 행성이지만 매우 척박해 아무도 오지 않는다. 대기에 구름이 많아 행성에 빛이 들어오지 않고 땅은 어두워 검은 사막행성 D라 불리기도 하는 이 행성의 볼거리는 딱 하나, 이 어두컴컴한 사막밖에 없다. 아무도 오질 않으니 지금까지 찾지 못한 생명체를 발견하기 수월할 수밖에 없겠지.

오늘은 이 행성에서 사는 소수의 사막유목민 무리를 발견했고 ‘108 은하 번역기’를 사용해 부족민 텐트 주위에 연구 텐트를 설치해도 되는지 물어보았다. 물론 친목을 위해 음식물과 생필품을 주는 것이 필요했다. 물론 준비는 해왔다. 난 아마추어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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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 6일 - 2일 차

기분이 좋다. 어젯밤 사막 행성 D에 몇 없는 3개의 갈색 바위산 중 하나에 발굴 로봇을 보내놨는데 성과가 있었다. 오늘 아침에 나의 사랑스러운 로봇들이 발견한 바에 따르면 바위산 안쪽에 금속으로 만들어진 벽이 있다고 한다. 나는 에너지바를 입에 물고 더듬이를 휘날리며 우주선에 뛰어올랐다. 창밖으로 볼록볼록한 사막 위에 덩그러니 솟아있는 갈색 바위산이 보였다. 유목민들이 위험하다고 여기는 곳 중 하나였다. 바위산 주위는 사막밖에 없어 누군가 사막을 무지막지하게 잡아당겨 만든 것 같은 모양새였다. 그들이 얼마나 이곳을 두려워하는지는 표정에서 잘 나타난다. 왠지 모르겠지만 내가 ‘바위산’이라는 단어를 말하면 그들의 표정은 사막에서 밟으면 빠져나올 수 없는 ‘절삭벌레의 주둥이’를 언급할 때 짓는 표정보다 몇 배는 더 찌푸린다.

발굴 로봇이 보여줬던 거대한 금속 벽은 바위산 깊숙한 곳에 있었다. 실제로 보니 벽이 아니라 모래에 덮인 거대한 문이었다. 현재 기술보다 몇천 세기 늦게 만들어져 보이는 기계장치였기 때문에 쉽게 문을 연 후 안쪽에 들어온 나는 거대한 공동을 발견했다. 솔직히 말하면 실망스러웠다. 그곳은 어떤 비행물체를 하늘로 쏘아 보내기 위한 구조물 같았다. 우주 곳곳에 이런 멸망한 문명은 흔하게 있지만, 로켓이라니… 정말 오래된 비행 방식이 아닌가? 나는 더듬이로 입을 만지작거리며 몇 시간 돌아다니다 통제소라 예상되는 곳에서 거의 부서져 가는 작은 모니터와 몇 가지 칩셋을 가지고 텐트로 돌아왔다. 오늘은 비행하며 모래 먼지를 뒤집어썼으니 씻고 이것들은 내일 자세히 조사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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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 7일 – 연구 3일 차

재밌군. 어제 발견한 이 작은 모니터는 통제소에서 있었던 어느 고대인의 휴대용 통신 물품인 것이 분명했다. 믿을 수 없이 오래된 방식으로 작동되지만, 이 기계 안에 기록되어 있는 사진과 글은 충분히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기록물 중에는 기계 사진뿐, 인물사진이 한 개도 없었다. 이상하군 원시 우주인들은 친구나 가족사진을 가지고 다닌다고 들었는데…. 단지 통제소에서 일할 때 쓰는 용도인 걸까?

이 휴대용 통신 물품에서 발견한 글은 누군가가 보낸 공지문이었다. 고대의 이미지로 제작된 문서라 ‘108 은하 번역기’를 사용해도 해석이 완벽하지 않았지만 이해할 수 있는 내용만 추려보자면, 그들의 도시 이름은 ‘Mu’라 불렸으며 “근래에 빈번히 일어나는 ‘감정범죄자’들의 과격 행위로 사회가 혼란스러우며 연관된 사람은 모두 사형일 것이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감정 범죄는 무엇일까? 어떤 감정이길래 범죄에 해당하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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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 8일 – 연구 4일 차

이곳의 태양은 아주 밝지만, 행성의 대기층에 쌓인 구름이 두꺼워 행성 표면에 많은 빛이 닿지 않는다. 오전은 타 행성의 밤과 같이 검다. 어두운 하늘에는 구름으로 덮인 태양의 흐릿한 윤곽선만이 보인다. 이곳에서 빛은 매우 중요하다. 아침마다 눈을 크게 뜨고 구름에 가려진 무채색의 태양을 응시하는 주술사들의 표정을 보면 구름을 뚫고 빛이 쏟아지길 기다리는 것만 같다. 빛을 신적인 존재로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태양을 마주 보고 빛에 도취된 듯 고요히 앉아서 하는 저 명상이 주술사들의 첫 일과이다. 나는 질문을 하고 싶어 타 사막 행성들의 생물들에 대한 특징들을 생각하며 명상이 끝날 때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느새 끝났는지 그중 하나가 고개를 돌려 나에게 무엇이 궁금하냐고 몸짓어로(이곳 주술사들은 발성기관을 제거해서 몸 이곳저곳을 움직여 대화한다) 물어보았다. 옆에 있던 주술사 수습생들이 그 몸짓을 통역해줬다. 어제 고대인의 휴대용 통신 물품에서 발견한 단어를 모래에 그려 보여주며 이 언어에 대해 아는 것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한참을 뚫어지게 보더니 이 언어가 ‘사막의 모래바람만이 부르는 옛 이름’이라는 아주 오래된 언어이며 현재는 오직 주술사들이 점을 볼 때만 사용한다고 했다.

주술사가 나에게 어디서 이 언어를 발견했냐고 질문했지만, ‘바위산’을 두려워하는 그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칠까 멋쩍은 더듬이 떨림으로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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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 9일 – 연구 5일 차

이 행성은 밤이 되면 빽빽했던 모든 구름이 걷히고 하늘에 4개의 각기 다른 색의 밝은 위성이 보인다. 위성의 반사광 덕분에 밝아진 하늘 아래에서 몇몇 원로 주술사들이 수습생들과 함께 무리를 지어 어떤 자국을 따라다니길래 호기심이 일어 그들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파여있는 자국 안쪽을 자세히 보니 액체에 젖어 뭉쳐진 작은 모래 덩어리들이 보였다.

모래 위의 줄무늬 자국을 따라다니는 주술사들과 그 주술사의 뒤를 따라다니는 수습생. 제일 뒤에서 따라다니고 있던 나는 수습생들끼리 조용히 이야기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지금까지 이 행성에서 들어본 적 없는 언어를 사용한 것이 분명해 녹음기를 켰다.

나는 주술사들에게 이 줄무늬가 무엇인지 물어보았고 어제처럼 주술사들의 몸짓어를 수습생들이 통역해줬다. 그들이 말하길, 자신들은 ‘Alago hajimara의 자취에서 점을 보는 중’이라 한다. Alago hajimara? 점? 갸우뚱하는 내 더듬이를 보며 주술사들의 눈이 휘어졌다. (원로 주술사들은 입을 꿰매고 천을 덮고 다니기 때문에 웃고 있는 눈만 볼 수 있다) 나의 이상한 표정을 이해하고 주술사들은 ‘신이 실수로 놓고 간 생명에서 미래를 본다’고 다시 말해줬다.

난 그들이 말한 ‘생명’과 ‘미래’로 아리송해졌다. 유추해 보면 흔적을 남기고 움직이는 동적 물건 또는 생명체가 미래에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주는 것인가?…. 나는 흥분해서 그 생명체를 어디서 볼 수 있냐며 상기된 더듬이를 들이댔는데, 옆에 있는 수습생들이 고개를 저으며 지나간 지 한참 되어 먼 사막 어딘가에서 돌아다니고 있을 거라 했다. 뭐라도 얻고 싶어 그것의 생김새를 물어보았다. 한 주술사가 손가락으로 모래에 투박한 그림을 그려 보여줬다. 이 일지에 이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상상하기에는 마치 액체에서 사는 생명체들과 비슷한 형상이라 생각된다.

난 축 처진 더듬이를 덜렁거리며 텐트에 돌아와 수습생들의 목소리를 녹음한 파일을 ‘108 은하 번역기’로 해석해 보았다. 제대로 해석되지 않아 무슨 뜻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것도 ‘사막의 모래바람만이 부르는 옛 이름’이라는 그 고대 언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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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 10일 – 연구 6일 차

원로 주술사들이 자신들의 부족 회의 텐트에 손님으로 초대해줬다. 그들은 친목을 위해 찾아온 근처의 다른 부족 원로들에게 나를 보여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나는 이곳 사람들에게 선물이 될만한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고산지역의 연구재료 채집을 위해서 구비했던 물건인 무중력 물약을 주기로 했다. 나는 선물을 주며 매우 무서운 표정으로 주의하라고 경고했다. 마신 후 중앙 우주 시간으로 10분이 지나면 바닥에 추락하니 꼭 제한 시간 전에 지상에 착지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들은 설명을 듣고 물약이 주는 능력에 대해서 매우 놀라워했다. 부족 전사들은 절삭벌레나 먼지괴물을 피할 때 좋겠다고 자기들끼리 쑥덕거렸다. 이 물약은 우주생명 연구단의 특허품이지만 연구단인 나도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다. 더듬이가 으쓱거렸다. 그러나 걱정이군. 이들이 10분을 측정할 수 있을까? 가기 전에 원자시계를 주고 가야겠군.

선물 덕분에 좋아진 분위기에 도움받아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았다. 특히 이 행성 고대인들의 번영과 멸망에 대해서…. 주술사들은 연기가 흘러나오는 구멍 난 돌을 중앙에 두고 둥글게 앉아 구전으로 전해져오는 고대인들의, 자신들의 조상들 이야기를 들려줬다.

몇천 년 전의 고대 도시 ‘Mu’인들은 모든 감정표현을 부끄러운 행위로 인식하고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다고 한다. 그들은 감정을 가진 사람들을 배척하고 사형에 처했다고 하는데 이때를 붉은 시대라고 한다. 붉기만 했던 한 시대가 끝나고 백색 시대가 왔다고 한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무감정의 생물이 되어 자신이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 모르는 채 살다가 삶의 의미를 잃고 도시 밖을 정차 없이 걷다 모래가 되었다. 그러다 모두가 도시만 남기고 어딘가로 흩어져 버렸다고 한다. 이 행성은 이미 고갈된 수분으로 대기 조종 시스템 없이는 지상에 식물이 자랄 수 없는 행성이었고 시스템을 조종하는 사람들이 사라지자 사막행성이 되었다. 도시는 몇 천년간 모래가 쌓이고 풍화되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현재는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원로 주술사들은 옛 이야기를 끝내며 주위에 있는 수습생들에게 절대 고대인들의 기술에 가까이 가지 말고, 보지도, 듣지도 말라고 경고했다. 자신들도 선대 주술사들에게 이와 같은 주의를 들었다고 한다.

나는 그제야 고대인들의 건축물이 숨겨진 바위산에 대해 말할 때마다 왜 그들이 인상을 찌푸리는지 이해했다. 이미 그들은 산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던 것이었다. 긴 시간 동안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방향을 바꿔 내가 이곳에 왜 왔는지, 어디에서 왔는지, 다른 세상은 어떤지 물어보길래 한참을 답변해주었다. 그러다 함께 음식을 먹었는데 나는 가져온 음식을 먹었고, 그들은 음식을 입으로 먹는 게 아닌… 음식으로 추정되는 액체를 피부 이곳저곳에 발랐다. 그 놀라운 모습을 보고 그 행위가 영양분 섭취인지 물어봤고 그렇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곳 사람들은 머리 더듬이를 사냥감에 꽂아 녹여먹는 Y행성의 야만인들보다 더 희한한 종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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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 11일 – 연구 7일 차

어제 주술사들이 들려주었던 이야기 때문인지 고대인들이 나오는 꿈에 놀라 잠에서 깼다. 대충 더듬이 세수를 하고 몽롱한 기분으로 오늘 할 일들을 순서대로 적었다.

1) 주술사들이 따라다니던 사막 위에 줄무늬를 만든 정체 ‘Alago hajimara’라 불린 생명체를 찾기

2) ‘사막의 모래바람만이 부르는 옛 이름’이란 고대 언어 번역하기

나는 방대한 사막에서 돌아다니는 생명체를 찾기 위해 발굴 로봇 대신 정찰 로봇 벌레들을 날려 보내기로 했다. 옆구리를 벌리자 벌레들이 튀어나와 멀리 날아갔다. 나는 우주선을 타고 정찰 로봇과 바위산을 한 번 더 다녀오기로 했다. 이 고대 언어를 번역하려면 더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바위산에 들어 온 나는 먼저 고대인들의 숙소를 찾았다. 그나마 개인적인 물건이 있을 것 같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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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 12일 – 연구 8일 차

어제 정찰을 보냈던 로봇 벌레들이 도착했다. 사막 행성D는 인공위성이 없어 벌레들과 무선통신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로봇벌레들이 도착하자마자 홀로그램 기기에 연결했다. 동그란 회색 구체가 공중에 투사되었다. 구체 위에는 벌레들이 찍어온 행성의 모습과 그 위에 있는 유목민 무리들을 보여줬다. 총 256개의 부족이 있었고 각 무리마다 멀리 떨어져 자신들의 구역을 만든 것 같았다. 특이하게도 무리의 수와 같은 256마리의 ‘Alago hajimara’를 발견했다. 그것들은 한 마리당 한 무리의 주위를 배회하고 있었다. 흥분되었다. 이 생명체를 실제로 보진 못했지만, 홀로그램 영상으로 어떤 형태와 기관을 가졌는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금속과 비닐로 만들어진 몸통에 3개의 더듬이와 7개의 다리를 가진 기계 생명체였다. 그런데 왜 유목민 한 무리당 이 생명체 한 마리만이 주위를 배회하고 있는 걸까?

#13월 13일 – 연구 9일 차

오늘 다른 바위산 속의 고대 유적을 돌아다니다 이 기계 생명체가 왜 사막을 돌아다니는 것인지 알 수 있을 만한 증거를 찾게 되었다. 그리고 돌아다니면서 알 수 없는 액체를 뿌리는 이유까지 알게 되었다. 어떤 개인 숙소에서 엔지니어가 설계한 도면을 찾았는데 여기에 그려진 내용을 유추하자면 사막에 뿌려지는 액체는 나노머신으로, 모래 아래에서 새로운 기계 생명체를 만들어 내는 것 같다. 하지만 도시 ’Mu’가 멸망하고 몇천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계속해서 액체를 뿌리고 있었다면 사막이 이 기계로 채워질 만큼 무수히 많아졌어야 할 텐데 그러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이것들이 행성에 무리 짓고 있는 인간의 군집에 비례해 만들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이 행성 주민들과 아주 밀접한 관계인 생명체로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얻기 위해 유목 무리의 주위를 배회하고 있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나는 초음파로 이 방의 주인이 벽 구석에 만든 작은 비밀공간을 찾았다. 열어보니 작은 공책이 있었는데, 여기에는 ‘Mu인’들의 딱딱한 형태의 문자들과는 다르게 자유분방한 필기체로 무엇인가 기록되어 있었다. 어떤 감정이 글씨에서 느껴졌다. 감정을 쓰는 표현이 터부시되어 있으니 이곳에 숨겨놓았으리라 생각되었다. 공책은 시간을 내서 천천히 살펴보려고 연구 텐트로 가져왔다. 내일은 모래 속 나노머신을 연구해 보기 위해 기계가 지나간 자리에서 액체를 채취해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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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 14일 – 연구 10일 차

오늘 오전에 보낸 정찰 벌레들이 찾아와 ‘Alago hajimara’가 부족무리로 다가오고 있다고 했다. 유목민들에게 이 생명체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겠지만 내가 관찰한다고 알리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원로들은 내가 읽을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승낙을 해줬다. 그리고 주위에 모래괴물이 있다며 부족 전사들을 붙여줬다. 원로들은 아직 나를 믿지 못하는 것 같다.

오늘에서야 유목민들의 언어에 색에 대한 단어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유목민의 언어로 검은 사막이라 불리는 이곳은 13개월의 대부분 빛이 많이 들어오지 않아 어두울 뿐 사막의 모래는 사실 검은색이 아니다. 이 어두운 행성의 영향에서 진화해온 것인지 유목민의 눈은 어두우면 안광을 뿜어내는 M 행성의 동물들과 비슷하다. 하지만 사물의 형태만 구별할 뿐 인지되는 색은 적은 듯하다. ‘밝아지리라, 매우 밝다, 밝다, 덜 밝다, 덜 어둡다, 어둡다, 매우 어둡다, 어두워지리라’ 같은 단어들만이 그들이 가진 표현 방법이었다. 나는 그들이 이 기계 생명체가 뿜어내는 색을 보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다. ‘Alago hajimara’를 눈앞에 마주한 나는 오랫동안 그 몸체 안에서 요동치는 색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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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 15일 – 연구 11일 차

오늘 내 텐트 주위를 지나다니는 ‘Alago hajimara’를 발견하고 따라다녔다.

이 기계 생명체의 외형은 참으로 신비로워 보인다. 더듬이와 다리는 사막의 능선같이 유려한 곡선을 만들며 흔들거렸다. 인공 우주의 중앙기술자들도 이런 모습의 생명체를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본체 위에 달린 3개의 더듬이는 디자인보단 실용성을 위주로 둔 형태지만 본체 외형에는 다양한 조각이 새겨져 있다. 이 조각은 크게 4가지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면들의 형상은 아마도 사막 행성 D의 주위를 도는 4개의 위성 Le, La, Be, Da에서 모티브를 가져오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생각해보면 감정이 없는 사람이 이런 형태를 만들 수 있을 리가 없다. 어제 찾은 작은 공책을 인공 우주의 제 1행성 언어학자들과 함께 해석한 결과 역시나 그가 이 기계 생명체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Alago hajimara’는 1000km 주위에 있는 사람의 감정을 더듬이로 흡수해서 에너지원으로 삼고 있다고 쓰여있었다. 놀랍게도 이 행성에서 감정을 표현하면 눈으로 보이진 않지만 대기 중으로 감정이 방출된다고 한다. 그것을 이 기계가 흡수하며 자가유지하는 것이었다.

그 엔지니어와 Mu인들은 감정을 흡수하는 이 기계 생명체가 나오기 전에는 그나마 조금의 감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 기계의 탄생 이후에 완전한 무감정이 된 것이 아닐까? 일기장을 숨기면서까지 감정을 표현하던 자가 이런 기계 생명체를 만들었다니 참 아이러니했다. 아니, 만들 수밖에 없던 게 아니었을까?


연구원 M이 사막 행성 D에서 그린 'Alago hajim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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